-
딸천재의 화남 - 인내의 비무장지대 그리고 분노의 38선카테고리 없음 2024. 1. 19. 09:04
# 화나
누가 얘기 안 해줘도,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회사 생활하면서 짜증이나 불쾌의 골짜기를 넘어 진짜 화났다 영역으로 간 적은 손에 꼽기에,
-지난번 직장 10년 넘는 동안 2번?-
'난 꽤나 참을성이 있는 쿨한 성격이구나'라는 쿨신병자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올해에 만 4번 정도 앵그리 모드가 찾아왔다.
'와, 진짜 화가 나는데' 수준은 아득히 넘어가고,
터트린 다음에,
4번 다 '아... 화를 그렇게 표출하면 안 되었는데…' 수준이다.
아 물론 작년 올해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긴 하다.
뭐랄까.
내 혹 CEO가 되어 회계장부 조작하다 검찰 조사를 받아도,
이렇게까지 물리적 시간이 없을까 싶다.
하루에 몇 개씩 되는 책임이 크게 동반되는 의사결정을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매우 특수하게 바쁜 상황이라는 충분히 감안해도,
4번은 많다.
하지만,
덕분에 나의 '화가 나는군! 메커니즘'을 메타인지하게 되었다.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생각하여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며 자신의 학습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지능과 관련된 인식
출처 : 신아일보(http://www.shinailbo.co.kr)
# 인내의 비무장지대, 분노의 38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화난 적은 많지 않은데,
또 돌이켜보니 딱히 참은 적도 없다.
그러면 임계치가 높았을 뿐 인내심의 지대가 얇았나 보다.
일단 곰곰이 그 메커니즘을 비주얼화하여 보면 이런 것 같다.
사람은 분노게이지가 일정 정도 쌓이다 보면,
슬슬 인내의 비무장 지대에 들어선다.
인내의 비무장지대에서는 들어오는 분노에 비해 표출하는 분노가 상대적으로 작은 구간이다.
즉 아무리 열받아도 최대한 열받은 티를 안 내더라고 할까.
참고있다으… 상태 말이다.
불쾌한 반응이라든지, 냉랭한 반응이라든지, 어색한 표정이라든지 같은 여러 온도가 표출될 것이다.
그러다가,
임계치라고 할 수 있는 분노의 38선을 넘어간 순간,
크루루루룩.
터지는 거지 뭐.
나는 여태껏 내가 인내의 비무장 지대가 매우 넓은 사람인 줄 알았다.
인내의 도량이 넓은 사람?
그러나 요사이 나를 돌아보니 단지 역치가 매우 높았을 뿐 버퍼의 폭이 협소한 사람이었다.
과거 회사에 여러 일들이 있었을 때,
특히 카운터파티와 갈등일까?
혹은 굉장히 경우 없고 무례한 사람과 일할 때라든지 할 때,
주위에 나한테 '이야 정말 잘 참고 일하시네'라는 평을 받았었는데,
사실 난 그냥 신경을 끄고 타격감이 별로 없었던지라 딱히 뭘 참고 그런 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은 설거지가 쌓여있으면 못 보고,
지저분한 방에서 못 자고 등등의 거슬리는 포인트들이 있을 텐데,
나의 경우 그런 게 딱히 많지 않다.
다시 회사에서 인간 관계로 돌아가면,
기본적으로 나는 성악설을 믿고 있는 건가 보다.
# 성악설, 정신건강에 좋아
난 성악설을 믿는 것 같아라고 하면,
아는 동생은 '에이 아닌 것 같은데요, 딱히 사람들이랑 그다지 부딪치지 않잖아요'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엥? 성악설이라고 사람들과 싸우고, 성선설이라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했지.
그리고 '성악설이 사람 관계에서 스트레스 덜 받을걸'이라고도 했다.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불신을 하거나 회의적으로 바라본다는 것과 다르다.
오히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나한테 특별히 친절하고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성악설이니까-
오히려 잘해주면 매우 고마워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오히려,
그 동생한테,
'성선설이면 기본적으로 나한테 모두 친절해야 하고, 못되게 굴면 화가 나고 실망할 일만 있는 거 아냐?'라고 농담했던 것 같다.
결국 사람에 대한 기대치 문제일 수도 있는 것 같다.
# 공과 사, 회사 책상과 술집 옆자리 테이블 사이
사실 회사에서 그렇게 화가 날 일이 없어봐서,
진짜 진저리 치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직도 이해는 안 가긴 한다.
현재 프로젝트 상황이 나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안 좋은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이해관계자나 조직 내에 스트레스 총량이 엄청나게 확장되는 상황이다 보니,
화가 차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내가 창업자나 재벌 회장도 아닌데 회사일로 이렇게까지 화가 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한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굉장히 난감하다.
난감함을 넘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순간 판단이 안 서서 대응을 못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을 마주하면 나 역시 순간적으로 머리 회로에 공과 사의 경계가 마구 헝클어진다.
무슨 의미냐면,
당연히 회사에서 화가 나서 막 이리저리 목소리 커지면서 충돌하는 상황이 올 때,
일정 수준일 때는 같이 논리적으로 따지고 대응한다.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화난 부분을 따지고,
상대방에 멘탈을 계속 건딜면서 대응한다.
그러다가 상대가 그 이상하면 난 순간적으로 이게 공인지 사인지 막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같이 일정 임계치를 넘어 같이 화가난 후에는.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게 '어? 너 싸움 잘해?'이다.
다 큰 어른이 회사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뭔 술집이나 거리에서 이런 사람 마주하면 '아 얘는 나와 싸우자는 거구나' 하면서 판단이 서는데,
회사에서는 아니잖아.
회사에서 내 앞에서 성질내고 화내고하면,
내가 쫄아서 그 말대로 해달라는 건지?
아니면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굉장히 혼란스럽다.
차라리 나를 한 대 때려주면 내가 메시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서 편할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런 상황일 때는 차라리 나한테 먼저 욕하고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나는 뉴스에 반사회적인 일이면 모를까,
일반 회사뿐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에서 저 정도 화날 일이 많지 않거니와,
저 정도 화난 상황이면 이건 그냥 서로 치고받고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싶거든.
그런데 그냥 계속 말로 성질만 내고 있으니 마땅한 리액션을 못 찾고,
상대가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나 역시 말도 안 하고 그냥 빤히 30초, 1분간 눈 마주치고 보고 있게 된다.
'머릿속에는 뭐지 그냥 나와 치고받고 싸우려고 준비하는 건가?'
'그냥 때려도 되는 건가?'
진짜 별 어이없는 생각을 다 한다.
차라리 상대가 나도 덩치도 크고 한 190cm의 험악한 거구면 '아 저 사람이 나를 때리려 하는구나 얼른 납작 엎드려야지'라는 생각이라도 하는데,
그냥 치와와가 미친 듯이 짓고 있는 모습으로 밖에 안 보이니.
막말로,
멀쩡한 회사 다니고 가정 있는 사람들,
서로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칼부림할 것도 아니라서 그런가,
그렇게 본인 성질대로 질러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면서,
반대로 내가 어디 가나 거의 키나 덩치가 큰 편에 속하는 데,
그냥 뭐 안되면 회의고 토론이고 나발이고,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맨날 주먹을 치면서 성질만 부릴 수 없는 거지 않나.
# 대응의 부재
업계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매우 격렬한 프로젝트에 중심에 있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을 압축해서 만나게 되고,
나 역시 별의별 상황을 짧은 시간에 마주하면서 나에 대해서 알게 된 계기가 되고 있다.
먼저,
내가 임계치가 매우 높을 뿐 인내의 폭이 그다지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그 폭이 좁기 때문에 그런 격렬한 갈등 상황에 내가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나도 같이 더 화나면 나에겐 그냥 서로 치고받아야 하는 영역의 화남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상대는 공적인 영역에서 분노 게이지를 1부터 100까지 다양하게 표출하는데,
나의 공적인 영역에서 분노는 1, 5, 10, 30 정도 표출하고 그 이상은 상대방을 해치고 싶다 정도의 분노거든.
상대가 공적인 자리에서 나한테 70을 쏟고 있으면,
나도 적절하게 70을 쏟아야 건전하게 대응하는 건데,
나는 30까지 대응하다가 70이면 난 날아 차기를 해야 하는데.
결국 내가 공적인 자리에서 화를 세련되고 유연하게 내는 능력이 부족한 거지.
# 두 가지 기억
문득 옛 기억 두 가지가 떠올랐다.
과거에 서점에서 '화 잘 내는 법'이란 책을 보면서,
아 이런 책은 굉장히 소심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가? 싶었다.
나는 보통 어디서 말싸움을 피하지 않고 또 뚫린 입으로 하고 싶은 말을 반드시 해왔었거든.
즉 나 때문에 상대가 화가 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럴 때 나는 그냥 짜증 혹은 '아, 조금 화가 나네' 정도가 밀려오는 자리였지,
내가 크게 분노하는 상황에서는 공적으로 화를 내는 방법을 몰랐던 거야.
두 번째는,
필리핀에 살았던 친척을 만나러 갔을 때 일이었다.
친척이 반농담으로 말했었다.
필리핀은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며 특히 한국 사람들은 시비 붙다가 총 맞는 일이 있다며,
한국은 어디 음식점이나 길이나 시비 붙으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생각으로 소리 지르고 화내잖어,
여기서 그러다 총 맞은 사람 많아.
필리핀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순한데 한국 사람들이 그렇 나오면 자길 죽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정당방위라고 생각하고 총 쏜다니까.
이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했었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심정인지는 알겠네.
내가 요새 그런 심정이걸랑.
계급장 떼고 싸우자는 건지 그냥 회사 테두리 안에서 화내는 건지 모르겠어.
여하튼 요새 버라이어티하다.
내가 전직장에서 역대 분노 박스오피스 -내가 스스로 와 나 진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났어-라고 생각하는 게 10년 넘게 딱 2번이었는데,
작년, 올해 초까지 1년간 벌써 5번 기록 갈아치우고 있네.
한편 살면서 이 정도까지 여러 가지 상황적으로 악재 -Covid 문제로 인력수급 문제가 매우 큼- 가 겹치는 일은 없을 것 같기에,
그냥 올해 여름까지 잘 버티자 생각뿐이다.
-블로그 글을 못 쓸 정도로 핀치에 몰릴 일은 앞으로 없을거기에-
블로그나 좀 더 자주 업데이트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