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천재의 뜨끔 - 몰래 로또는 반드시 걸리겠군

 

 

# 로또와 아지트

로또 당첨되지도 않았는데 살 때마다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와씨 당첨되면 어디까지 알려야 할까다.

나는 일단 혼자만 알고 있다 쪽이다.

당첨사실을 누구에게 알릴 계획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로또 1등 당첨자 중 30%는 혼자만 알고 있겠다고 밝혔다. 또 배우자에게 알린다는 42%로 가장 많았으며, 친척(18%), 자식(5%), 친구(3%) 순이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2377922

로또 되고 와이프랑 이혼각 잡아서 그런 게 아니라,

사채 빚에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 사람에게는 로또 당첨 소식은 플러스지만,

보통 사람에게 로또 당첨 소식 그 자체는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기야 요새 로또 1등 돼도 아파트 하나 사기도 힘든 시기구나.

여하튼 과연 배우자에게 안 들키고 혼자만 알 수 있을까나.

이전에는 뭐 그까짓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생각보다 나를 잘 파악하고 있구나 하고 뜨끔한 에피소드가 있다.

# 소설, 일인칭 단수

 

 

일인칭 단수저자무라카미 하루키출판문학동네발매2020.11.26.

와이프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일인칭 단수를 보다가 혼자 깔깔거리더니,

딱 내가 할 법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내가 너 성향을 좀 알지'라고 읽어보라는 것이다.

그래?

한 번 그 구절을 볼까나.

 

그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

대학생 때 한 번, 못생겼다고 할 정도는 아니어도 외모가 좀 별로인 여자애와 데이트한 적이 있다.

상당히 별로라고 말해버려도 될 것이다.

친구 주선으로 더블데이트를 했는데, 그 때 내 파트너로 나온 것이 애였다.

흐음,

못생겼다고 할 수 있는 여자와 데이트하는 내용인가?

계속 읽어보란다.

오케이.

그녀는 아담한 체구에 눈이 작았다. 그러나 한눈에도 성격이 좋아 보였다. 수줍은 듯 작은 소리로 말했는데, 목소리 자체는 또렷했다. 분명 좋은 성대를 타고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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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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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즈를 좋아했지만, 그녀는 재즈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공통된 화제를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녀가 재즈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기에, 나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아트 페퍼 얘기를 했다. 어떻게 해서 재즈를 좋아하게 되었고, 재즈의 어떤 부분이 재미있는지. 그녀는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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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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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 때 기숙사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녀는 수첩 뒷면에 번호를 적은 뒤 깔끔하게 찢어내서 내게 건넸다. 하지만 결국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뭐야?

별 내용 없는데?

아니란다.

이제부터 딱 네가 할 것 같은 행동 패턴이 나온단다.

그래?

나는 딱히 이런 형태의 경험 자체가 없어서 그런 행동 패턴이랄 게 없는데.

며칠 후 더블데이트를 주선했던 친구를 만났더니, 그가 내게 사과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에 그렇게 못생긴 애를 데려와서 미안, 실은 더 예쁜 애를 소개해줄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길래. 할 수 없이 대타로 데려온 거야. 그때 기숙사에 걔밖에 없었대서. 내 여자친구도 너한테 미안했다더라. 다음에 꼭 보답해줄게."

아니 뭐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내가 결정하는 거지,

왜 지들이 미안해하지?

어쨌든 다음.

친구에게서 그 말을 듣자, 그녀에게 전화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분명 예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못생긴애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차이를 그대로 놔두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는 뭐라고 할까,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아...

이 부분 부터를 말하는구나.

마음의 문제다. 그녀와 사귀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더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지 몰라도, 뭔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을 것이다. 그녀를 그저 못생긴 애로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와 부정하지 못하겠더라.

이런 상황은 없었지만,

있었다면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 같다.

별 얘기가 없었다면야 그냥 흘러갔겠지만,

수려하지 않은 외모의 여성을 소개해 줬다고 미안해하고 그러면,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 같긴하다.

흐음.

와이프 실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내 의사결정 구조에서 중간 중간 껴있는 랜덤하고 예측불가한 부분에 대해서 이해 못하겠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뭔가 파악한 모양이다.

이거 원,

내가 로또 1등 되고 평상시 처럼 행동해도 알아차릴 것 같은데.

로또 1등 되기 전 부터 고민하게 만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