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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2 그리고 IMF에 대한 기억들일반 정보 2024. 1. 23. 01:31
# IMF 때 집안이 일어났던
IMF 오기 전 꽃밭.
80년, 90년 대 드라마 속 대학생들을 보면,
지금 젊은 대학생 동년배들 한 마디 나올 것 같다.
'하... 할배들요. 그냥 머릿속이 꽃밭들이셨구먼'
드라마에서 저 푸른 잔디밭 위에 통기타 뚱땅뚱땅 거리고 노래나 처하는 장면들뿐이다.
대학생활은 뚱땅뚱땅.
뚱땅뚱땅은 대학생활!
당시 노랫소리에 흥이 넘치는 것은,
오늘 보다 무조건 좋은 내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부모님 세대 보다 더 못 살 거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대.
저 멀리 미래를 보고 있자면 그냥 빛 그 자체!
눈이 부시게 밝다.
IMF 전까지는 그랬더랬다.
지금도 즐거운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매일매일 모든 사람이 축제 분위기는 아니니까.
음악이 꺼진 후에는 또다시 스펙을 쌓아야 하는 시대.
IMF 때 팔자 바뀐 사람들 많았던 거 같다.
주변에도 가끔 술자리에서,
쇠주 한 잔 꺾는 아재 중에도 '라떼는 금수였는데 IMF 때 집안이 크로스 카운터 제대로 맞고 가세가 KO 되었지'하는 사람 여럿 있다.
공채를 하는 대기업 직책 피라미드만 봐도,
IMF 직후에 연도에 입사한 사람이 매우 매우 적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IMF에 일어난 사람
반대로 IMF 때 팔자 고치고 집안이 우뚝 세워진 사람도 있다.
두 명 정도 본 것 같다.
정확히는 그 양반들 부모들이 IMF 때 이룬 거룩한 성공의 결과들이다.
막상 본인들은 부모들이 어떤 방식으로 벌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워낙 어린 시절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재테크라든지 경제금융에 대한 개념이 없던 나이라.
대충 기억하는 것들은,
어떻게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외화로 대출을 받았다는 얘기,
그걸로 투자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금 모으기 운동.
우리 기준에서는 아니! 나라를 위해 금 모으기!
IMF 때 금 모으기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긴 한데.
개인투자 재테크 관점에서는 금 모으기는 애매했다.
이후 금 값도 오르고 했으니 말이다.
# IMF 역사 공부
결국 어떻게 IMF 때 기회를 잡고 돈을 벌었는지 들을 수 없었지만,
추측할 수 있는 힌트는 하나 들었었다.
그 지인분의 아버지는 얼핏 듣기로 젊은 시절 영국계 회사에 다녔었다고 한다.
런던에서도 있었고,
자주 왔다 갔다 했었고 말이다.
지인이 태어난 시기와 형제들의 나이로 추정해보면 대략 1970년대 중후반부터 런던에서 일했겠구나 싶더라.
근데 그 시기 즈음 영국에 좀 이벤트가 있었다.
선진국인 영국이 금융위기가 있었다.
위기상황 = 1차 오일쇼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74년에 집권한 영국
노동당 정부는 사회 보장제의 확대 등을 위해 정부공공지출을 확대함으로써
76년 하반기부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
76년초 OECD로부터 53억달러 상당의 스탠바이 차관을 지원받았음에도
파운드화는 더욱 가파르게 하락을 거듭했다.
영국도 금융위기로 인해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여 큰 위기를 겪었었다.
3월 파운드당 2달러를 웃돌던 파운드화 가치는 9월27일에 영국중앙은행의
방어선이던 1.77달러아래로 떨어졌다.
.
당시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마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
이틀후인 29일 캘러한총리는 일부 내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선진국인 영국이 1976년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것이다.
추측이지만,
지인분 아버지는 이런 과정을 다 겪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자마자 발 빠르게 포지션을 잡은 게 아닐까 싶다.
아마 당시에는 IMF나 금융위기가 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금 모으기가 애국심에서 나왔겠지만,
국제금융이나 재테크 지식이 지금처럼 축적되어 있었다면 과연 사람들이 이렇게나 참여했을까 싶다.
그만큼 금융과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알기 어려웠다.
게다가 워낙 한국 경제가 좋은 시절이라,
상승 바람을 어떻게 탈지에 대한 고민을 해봤지,
난기류에 어떻게 안전하게 착륙해야 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외환 위기나 외환 고갈을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IMF 구제를 받으면 어떤 혹독한 조정을 받게 될지,
또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잘리게 될지 상상을 못했다.
특히 공무원이나 다름없던 은행이나 연구원들은 희망퇴직 소식에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로 인지부조화가 왔을 것 같다.
영국은 IMF가 공공지출부문 요구를 일부 양보함으로써 2년간 25억파운드를
삭감하는 성과를 얻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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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대가는 재정.금융 주권을 사실상 IMF에 양도하는 뼈아픈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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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에는 영국을 "사치스런 정부"로 비난한 IMF와 미국 재무장관
독일 분데스방크총재 등 강경론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영국과 처한 상황이 다를 수 있을지라도,
IMF 진행 상황을 경험했다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지는 알 수도 있었겠다.
# 돈의 역사
경제기사나 금융 공부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실용적인 목적으로 할 것이다.
돈 버는 거지 뭐.
한 가지 테크닉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상승 바람을 타는 법과,
난기류를 만났을 때 추락하기 않는 법 두 가지 테크닉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종목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리고 금융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안다는 것에서 체화라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지난달 나온 돈의 역사 2 같은 책 말이다.
저자와 개인적으로 교류가 있는지라,
이럴 때 '내돈내산' 당당하게 붙이는 맛이 있다.
블로그 이웃들 책은 다 사서 보고자 하나,
요새 내 독서량이 급감하면서 진도가 참 안 나간다.
한때는 1주에 2~3 권씩 읽었던 때가 있는데,
솔직히 요새는 1달에 한 권도 힘들다.
바쁘다는 것은 핑계고 코로나로 외출 안 한다는 핑계가 책이 아닌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여하튼 늦더라도 모두 읽어보려고 한다.
이웃의 블로그 글도 읽는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출간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지.
하여튼,
책의 내용 중에.
# 스페인 독감
사실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는데,
전후 상황에 대해서 특별히 찾아볼 생각은 안 했다.
왜냐고?
그냥 어쩌다 한 번 생길 일 정도로 생각했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도 있었지만,
글로벌 경제 시스템 자체가 마비될 정도로 초대형 악재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또한 사회 전체의 문화를 뒤바꿀 정도로 영구적인 상흔을 남기진 않았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스페인 독감이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만난 게 코로나다.
파트2, 4장. 전쟁보다 무서운 '스페인 독감'의 나비효과, 이민법 개정
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스페인 독감이 끼친 영향에 대해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전염병은 각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도 바꾸어놓는다. 많은 사회학자가 기아와 전염병이 장기간 지속된 뒤 혐오 민감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혐오 민감성은 질병과 직접 싸우는 신체적 면역체계와 함게 우리를 감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다고 해서 '행동적 면역체계'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
지배자들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사회 내에서 가장 약한 계층에게 그 책임을 떠넘겼다.
.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으로 미국에서만 약 67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후, 서서히 '외집단'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결과물이 1921년 이민법이다.
가끔 이렇게 데자뷔 같은 모습을 보면,
인간은 왜 이리 학습을 못할까 생각하다가도,
내가 주기적으로 하는 똑같은 뻘짓을 떠올리면 수긍하게 된다.
몇 년 전에 한 이불킥을 그냥 형식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같은 이불킥이다.
끄응.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인터넷 밈을 보고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이렇게 매번 역사가 반복되는 데 왜 우리는 교훈을 못 얻을까 생각도 든다.
마치,
어린이들한테 낯선 사람 조심해라 조심해라라고 하면,
아이는 낯선 사람을 성인 남자 아저씨 정도로 산정하게 된다.
배우는 것과 체화하는 것이 불일치하는 거지.
사실 낯선 사람이라면 여고생부터 노인까지 총망라되어있는 데 말이다.
인천 8세 여자 초등학생을 유괴한 뒤 살해한 주범 김모 양(18)에 징역 20년, 공범인 박모 씨(20)에게 징역 1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3일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양과 박 씨의 상고심에서 각각 징역 20년과 1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은 도대체 낯선 사람의 정의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요새 아이들한테는 낯선 사람에 대한 정의를 훨씬 광범위하게 가르치긴 하더라.
여튼,
금융 역사를 공부할 때는 이 당시 사람들은 왜 이렇게 생각했지 하다가도,
지금의 금융위기 등을 겪어 보니,
아이코야!! 남 욕할 게 아니다.
금융의 낯선 사람을 조심한다 조심한다 마음을 먹었는데,
그 낯선 사람을 내 멋대로 산정하다 보니,
그냥 금융위기에 두들겨 맞는 거지 뭐.
그래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금융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낯선 사람'을 식별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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