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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천재의 공대 - 흥미로운 의대 쏠림 현상을 보며
    일반 정보 2024. 1. 18. 02:16
     
     

    # 당연히 의대지, 언제부터?

    씁쓸하다.

    꼰대가 되어가다 보니 예전에 모셨던 윗사람들이 은퇴하고 정년퇴임하고 그런다.

    그중에 당연히 존경스러운 분들이 있다.

    이야 이 양반 진짜 천재 같은데 나이 먹은 할 일이 없구나 싶기도 했다.

    이분들이 예전에 술자리에서,

    '이거 정년 다가오니 할 일이 없구먼, 아 내가 차라리 의대를 갔어야 하는데, 괜히 공대 가서! 젠장!'

    이분들이 이렇게 아쉬워하는 이유는,

    자기 보다 공부 못했던 애는 의대 선택하고 본인은 오히려 공부를 잘해서 물리학이라든지 엔지니어를 했는데,

    평생 수익을 따지니 도저히 쫓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격차가 난 것에 대해 씁쓸해 하기도 한다.

    지금 기준에서는 '에이 아재요 뭔 소리야, 의대 못 가서 그런 거 아닌겨?'라고 하겠지만,

    리얼이긴 하다.

    기사 하나를 가져와 보자.

    경쟁률만 높은 게 아니다. 올해 초 각 대학들이 공개한 2022학년도 정시 합격자 통계를 보면, 전국 34개 의대 중 서울대 의예과 다음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높은 컴퓨터공학부(국어, 수학, 탐구2 상위 70% 기준, 292.5점)보다 성적이 높은 의대가 22개에 달한다. 강원대 의대, 충북대 의대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백분위 점수가 같았다. 최상위권 수험생 중 의대 공부가 정말 적성에 맞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의대부터 지원한다는 뜻이다.

    서울대에서 의대 다음으로 성적이 높은 게 컴퓨터공학부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지방 의대 포함 22개의 의대가 중간에 들어가 있다.

    즉,

    한국의 수재들은 전국 22개의 의대를 채운 후에 겨우 서울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컴퓨터공학을 채운다.

    초상위권 학생의 의대 선택은 당연히 상식이다.

    하지만 수험생들 학부모나 진학 상담 교사들은 '내가 학생 때는 의대 인기가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정말이니까.

    1984년 12월 29일 본보가 대학과 입시업계 자료를 취합해 보도한 지원기준표에서 자연계 최상위 대학은 서울대 전자공학(학력고사 312점 이상), 서울대 전산기공‧의예과(307점), 서울대 제어계측‧기계공학‧물리학(302점) 순이었다. 연세대 의예과 지원가능 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와 비슷한 297~301점, 고려대‧가톨릭대 의예과 지원가능 점수는 283~292점이었다. 순위로 치면 각각 9번째, 20~30번째인 셈이다.

    80년대 정도 때는 다른 학교 의대 보다 서울대가,

    서울대에서도 최상위 학과는 이공계였다.

    그니까 서울대 갈 성적이면 다른 학교 의대는 안 갔던 것이다.

    80년대가 좀 아득할 수 있지만,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시대에도 여전했다.

    1990년 종로학원이 모의고사 결과, 지원 희망대학 등을 토대로 발표한 대입배치표도 비슷하다. 당시 4년제 대학 자연계 학과 합격자 성적 순위를 보면 서울대 물리학, 컴퓨터공학, 의예, 전자공학, 미생물학 순이다. 상위 20개 학과 중 서울대를 제외한 학과는 연세대 의예(12위), 딱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런 기조가 급격하게 바뀐 결정타는 바로 IMF였다.

    정확히는 IMF에 직격탄으로 참교육 당한 어른들이 깨달은 것이다.

    1997년 겨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대기업 이공계 연구소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의대 쏠림이 가속화됐다. 이은경 전북대 교수는 논문 '이공계 기피 논의를 통해 본 한국과학기술자 사회'에서 "IMF 위기 이전에 과학기술자들은 사회 보상 측면에서는 미흡하지만 상대적으로 직업안정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그 믿음이 깨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도 IMF 터진 후 영향을 받은 세대인지라 이공계에서 의대 선호로 바뀌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 엿보는 성적이라 참 아쉬웠다.

    친구 A는 학창 시절부터 꿈이 치과의사였다.

    하지만 A의 부모님은 꿈과 진로가 못마땅했었다.

    '남자가 하루 종일 사람 입속만 들여다보고 살려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남자가 크게 봐야지!'라며 이공계나 경제경영학을 전공하길 바랐던 거 같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정말 개념 없는 아버지일 수도.

    '세상 물정 모르시는 구만'

    라고 하기에는 그 아버지는 당시에 꽤나 좋은 회사의 고위 임원이었던 거 같다.

    # 고위 임원 어쩌라고?

     

    그 친구 아버지가 생각이 없는 분이냐고?

    그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소득 직업 순위 자료를 한 번 볼까나.

    2005년에 기업 고위 임원이 소득이 치과의사보다 높다는 인식이 있었다.

    친구 A도 치과의사로 떼돈 벌어야지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사회생활, 조직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본인 병원 하나 조용히 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기업 고위 임원이 당시 고소득 1위라는 것은 이전에 쓴 꼰대론과 연결이 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신입사원들도 임원을 꿈꾸며 꼰대들이 뭐라고 하든 '충성! 충성!' 하면서 야근하고 주말에 나오고 그랬던 것이다.

    왜냐고?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임원 되면 의사 보다 더 많이 벌 수 있고 팔자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네는 안 하겠어.

    기대 수익을 생각하면,

    난 회사의 개가 되어줄 수 있다!

     

    '내가 네 똥개가 될게' 올드보이의 대사 중

    어쨌든 한국에서는 의사의 기대 수익이 월등히 좋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에 몰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 인적자원

     

    기대수익이나 전망이 좋은 곳에 당연히 우수한 인적자원이 몰릴 것이다.

    인도의 경우 공대가 기대수익이 훨씬 좋은 우수 인력들이 공대로 몰린다고 한다.

    인도 친구들과 일 할일이 많아서 인도 그 유명한 IIT 공대, 공대 선호 현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단면만 본 것일 수 있지만,

    많은 친구들이 인도 밖에서 취업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고 공대가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여기는 듯했다.

    아마 인도 의대에 졸업해 봐야 인도에서 개업할 확률이 높아서겠지.

    무엇보다 인도 최고 공과대학이라는 IIT는 졸업만 하면 글로벌 회사에서 다 데려가잖아.

    IIT 칸푸르 캠퍼스의 경우에는 약 425명의 학부생과 348명의 대학원생이 다니고 있는데, 올해 총 47개 글로벌 기업에서 채용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19건에 비하면 150%나 늘어난 것으로 제시한 최고 연봉의 경우 글로벌 기업은 약 3억2500만원, 인도 국내기업은 1억9000만원이었습니다. 인도인들은 하버드나 MIT 입학이 IIT 입학보다 더 쉽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물론 의대는 어디나 우수한 인력들이 가는 곳이지만 한국 정도는 아닐 것이다.

    2022년 정시 기준 서울대 컴퓨터공학이 충북대 의예과와 비슷하다고 하니,

    미국으로 따지면 지방 의대 싹 채운 후에 하버드, 스탠퍼드, MIT가 차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미국도 의사가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이긴 한데,

    엔지니어로서 리스크를 안고 스타트업을 하든 창업을 하면 빌 게이츠되고 저커버그 될 수 있고,

    머스크 될 수 있는 사회라면 한 번 이공계로 가서 승부를 걸어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흐음, 리스크에 비해 압도적인 수익률이 기대되진 않는다.

    내가 한 방 제대로 날려서 이재용이 불가능하니,

    차라리 안정적 고수익을 선택할 것이다.

    만약,

    공대 나와서 석박사 대학원 동안 2-3억씩 연봉 주고 정년을 65세까지 교수처럼 보장한다면 상황이 다르겠지.

    # 똑똑해 똑똑해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서 사실 나는 와닿는 게 없었다.

    내가 아플 때 우수한 의사를 만나면 나한테 나쁠 게 없지.

    하지만 외국계 다니면서 한국 인적 자원 배분에서는 좀 아쉬운 느낌이 든다.

    가령 인도 공돌이들이 인도를 나와 실리콘 밸리 등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CEO 자리를 차지하고,

    어마어마한 성과들을 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예전에 황성현 전 구글 HR 파트너가 이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왜 한중일 출신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지 못할까.

     

    이 분은 왜 한중일 인재들이 인도 인재만큼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하지 못할까를 연구한 결과에 관한 영상이다.

    이유는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권위에 복종하는 문화

    둘째, 관계 형성 문제

    셋째, 약점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 체면 문화

    나도 다양한 국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느 정도 흥미롭게 봤다.

    그런데,

    나는 다른 아시아 나라는 잘 모르겠고 한국만 생각해 보면,

    인도처럼 한국의 의대 가는 수재들이 이공계를 통해서 들어가면 충분히 승산 있지 않을까 상상도 해본다.

    인도야 구글에 들어가는 인적 자원들이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대 의대에서도 천재 소리 들을 애들이 몰려서 가잖아.

    가령 우리나라는 미래의 아인슈타인이 될 수 친구들이 의사가 되겠지만,

    인도는 뭐 이런 엔지니어 회사 들어가서 알파고 같은 거 만드는 거겠지.

    물론 인도가 영어가 공용어라서 유리한 면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 최고 대학 나온 엔지니어들과 일해보면 얘들은 뭐 3~4개 국어 단기간에 금방 배우더만.

    일본에서 일하겠다고 일본어 깔짝 거리더니 원어민 처럼 하는 애들도 있고.

    애초에 그런 애들은 머리 구조가 다르니.

    뭐 여하튼 외국 애들이 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공대 선택하진 않았을 거고,

    자국 의대 보다 공대 ROI(투자수익률) 좋아서겠지.

    한국도 뭐 이공계 육성해야 한다, 반도체 인력 부족하다 얘기하지만,

    결국 이공계 진로의 ROI가 나와야 해결될 문제이다.

    국가급 석박사 인재들을 선별하여 대학원 때부터 3억씩 주고,

    IMF 전처럼 정부 출연연구소의 과학자로 들어가면 대학교수처럼 65세 정년 보장에 연봉 더 주면 달라지긴 하겠지.

    IMF 후 의대 쏠리겍 된 것은 결국 과학자들이 IMF에 40대 명퇴 당하면서 기조가 확 바뀐거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IMF 없었으면 어쩌면 최우수 인재들이 여전히 이공계 선호하여 몰렸으면 또 한국이 또 다른 레벨이었을 수도 있겠다.

    지금 K팝, K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통하는 걸 봐,

    엔터테이먼트 쪽에 국가 재능들이 꾸준히 몰려서 축적되니 뭔가 하긴 하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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