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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천재의 수다 - 6시간의 카톡과 1시간의 인터뷰일반 정보 2024. 1. 25. 01:59
# 15와 20의 사이 17.5245
어제는 커뮤니케이션이 풍부했던 하루다.
내가 속한 회사가 아직은 김치 국물에 거의 물들지 않은 회사인지라,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이 영어다.
아, 그놈의 영어.
주로 나는 위로 리포트 할 일이 많다 보니 더 괴롭다.
위로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숫자로 비유하면,
한국어라면,
17.5245 정도의 강도로 미묘하게 전달할 수 있는데,
내 영어로는 10, 15, 20처럼 5 단위의 강약 밖에 조절 못한다.
한국어로는 17.5245 정도의 강약 조절한 정치적 메시지를 글로벌에 전달하려 하면,
영어 표현력의 선택지는 15 아니면 20을 얘기해야 한다.
15라고 하면 ‘너는 왜 이리 소극적이야’ 소리 듣고,
20이라고 하면 ‘워워 너 혼자 다 하려 하지 마!’라고 한다.
아 놔,
17.5245 정도면 딱인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속 터진다.
영어 미팅을 하고 나면,
20-17.5245 = 2.4755,
혹은
17.5245 - 15 = 2.5245.
이만큼의 과부족을 전달 못하다 보니 뭔가 답답하다.
전하지 못한 잉여 메시지들이 쌓이다 보면 속에 천 불이 난다.
해소할 방안은 이런 소수점까지의 표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국어 수다다.
내가 요새 박찬호를 이해하겠다.
왜 이리 말이 많은지.
나야 그나마 한국에 있으니 이런 전달하지 못한 잉여 메시지를 다른 수다로 해소할 수 있지만,
박찬호는 휴... 힘들었을 것이다.
투 머치 토커가 어떻게 되었는지 공감한다.
# 1시간의 인터뷰
어제는 좀 흥미로운 날이었다.
지난주,
대학원 과정에 있으신 분의 메일을 받았다.
논문을 준비 중인데 금융 투자업계 사람의 인터뷰가 필요한듯했다.
나야 인제 금융 투자 업계라고 하기도 좀 애매하긴 한데 어쨌든 응했다.
크게 고민 없이 응했던 이유는 금융이나 경제 쪽 논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깊은 금융, 경제 쪽 지식을 기대하면 너무나 부담스럽다.
나는 내 금융 관련 지식의 강점, 단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나는 금융 지식 관점에서는 금융업계 전문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이가 부족하다.
깊이에의 강요를 좀 받아도 된다.
냉정하게 업계 사람들을 쭉 만나다 보면 내 한계가 분명하다.
단지,
특정 지식의 전송 손실률이 매우 작은 강점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뭐 지식 100에 전달률 100인 사람도 있지만,
이미 그런 분들은 유명인이 되어있기 때문에 나는 이 바닥에 적당히 그럴싸해 보이게 하면서 다닐 수 있다.
나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 약점과 강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잘난 척을 총으로 비유한다면,
어떤 사람은 총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은 비무장 상태겠지만,
나는 음 총은 들고 다니는데,
단지 소음기 달고 쏘는 정도라고 할까나.
그것도 총알이 많아서 막 쏘는 게 아니고,
총알을 최대한 손실 없이 정확히 쏠 수 있는 편인 것 같다.
막말로 퇴근 후 금융 공부 안 하고 맨날 블로그 글을 일주일에 5개씩 몇 년을 썼는데,
필력이 평균 보다 딸리면 너무 슬프잖아.
여하튼 논문 인터뷰 대상자 엄청난 금융 전문가를 찾는 금융 논문이 아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근데 내가 참 말이 많더라.
녹음 동의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문득 시간을 보니 녹음된 시간이 무려 1 시간.
내가 이때 ‘박찬호가 이래서...’라는 생각과 함께,
내 커리어의 시작과 지금까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과거 히스토리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 6시간의 카톡
과거 일이나 업무나 등등에 대해서 인터뷰 질문에 답이 바로바로 나왔었다.
원래 평소에 머리에 정리하진 않았는데,
마침 이 날 지인과 느긋한 카톡 랠리를 좀 오래 하면서 과거 업무와 업계부터 다른 주제까지 얘기하였던 터라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있었다.
특히,
마침 카톡 랠리 상대와는 겹치는 주제가 많은 터라,
대화 주제의 폭과 깊이가 매우 X, Y, Z축이 폭넓다.
뭐 대충 아무 주제 미사일을 마구마구 발사해도 유효 범위 안에 다 폭격되는 거 있잖아.
이런 대화 폭격 유효 범위가 넓은 이유 중 하나는 망각인 것 같다.
서로 알고 있는 과거 일을 너무나 생생하게 동영상 찍듯 기억하면 몇 번 얘기하면 재미없을 텐데,
그 기억의 뼈대는 굳건하지만 장식된 기억들이 망각으로 풍화되면서,
이야기를 하며 복원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하며 복원하는 과정 자체가 대화를 이끈다.
작은 부분 부분들이 망각으로 비어 있는 것을,
리믹스해서 다시 복원하고,
각자 시점의 감독판으로 다시 복원하고,
현재와 과거를 평행 우주처럼 대비해서 복원하고,
혹은 다시 리부트 해서 복원하며 말이다.
옛날에 친적 어른들이 술 마시면,
왜 저렇게 매년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해도 재미있어할까 했는데.
조금씩 잊고 복원하고 잊고 복원하는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는 거였다.
여하튼 카톡 랠리를 하면서 과거 기록들을 좀 복원해 놨었는데,
덕분에 인터뷰 과정을 수월하게 진행했었다.
한 시간이나 그렇데 떠들었다니.
내가 박찬호였다니.
박찬호야 정말 이루어 놓은게 많으니 말 많아질 수 밖에.
하지만 과묵해지는 타이밍은 나와 같다면이군.
잔소리 들을 때
본가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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