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딸천재의 영화 - 장진영은 참 예뻤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일반 정보 2024. 1. 25. 01:55

     

     
     

    # 그래도 변화는 있네

    중고딩 동창들과 술자리에 얘기하다 보면,

    ‘이 새끼들 참 꾸준해’라는 생각과 너무나 그 시절 그 쌈마이 돌아간다.

    아 사실 돌아간다는 생각도 안 든다.

    그냥 원래대로 했는데 그 시절과 별 차이 없다.

    인생을 연극을 비유하면,

    초창기 역할로 돌아가면 전혀 위화감 없이 그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고 할까.

    중고딩 때 했던 John 10000 E 역할은,

    당시 무대에 있던 애들과 만나면 또 이 나이 먹고 너무나 잘 할 수 있다.

    그렇게 신나게 낄낄 거리다가,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뭐야 씨앙’하고 늙수그레한 얼굴에 놀란다.

    영화 기억의 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기억에 문제가 있는 강하늘은 경찰서 있다.

    경찰은 나이를 묻고,

    강하늘은 21살이라고 한다.

    다들 어리둥절한다.

    왜 나이를 속이냐고.

    그리고 어리둥절하며 달력과 거울을 본다.

    현실은 늙수구레.

    가끔 이 기분을 느낀다.

    아놔 강하늘같이 생긴 애도 거울보고 충격받는 판에.

    그러하다.

    워낙 내 마인드는 예전과 다른 걸 전혀 못 느끼다 보니 가끔 술김에 다가오는 위화감이 대단한가 보다.

    차라리 마음도 같이 확확 늙으면 세상 편할 것 같은데 말이다.

    # 그래도 변한다

     

    내 마인드는 그대로야라고 자신했다가,

    어랏 생각보다 그래도 깊이가 생겼나?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다.

    옛날에 봤던 영화나 소설을 볼 때 그렇다.

    영화나 소설을 볼 때 과거 보다 훨씬 다중 초점 렌즈로 인물을 보게 된다.

    특히 예전에는 훨씬 인물 하나라는 ‘점’에 더 집중했다면,

    지금은 인물과 인물 간의 ‘선’의 질감이 훨씬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애증이라는 감정을 사실 난 잘 이해 못 했는데,

    육아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하 이게 애증이구나’ 너무나 사랑스러운데 또 밉기도 하고,

    서로 상쇄가 안되는 감정들이 이렇게 명징하게 공존할 수 있구나를 처음으로 느꼈다.

    기본적으로 난 ‘애’ 아니면 ‘무관심’이었던 거 같다.

    ‘증’까지 가기 전에 감정에 연결된 선을 빠르게 잘라서 무관심 모드로 전환해 버렸나 보다.

    크크크.

    육아 전쟁을 곧 시작할 전우들이여.

    지금 내 기분이다.

    육아 최고 힘든 시기를 지나 나는 이제 편안해졌소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면,

    얼마 전,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영어 제목인 ‘Between love and hate’가 훨씬 와닿는,

    다시 보니 대단한 영화네.

    내가 ‘애증’이라는 감정을 훨씬 생동감 있게 재구성하여 공감을 할 수 있으니 14년 전 봤던 때랑 또 다르다.

    당시에도 굉장히 인물들의 상황이 그리는 불협화음 그 자체로 화음이 만들어지는 관계에 탐복을 했지만,

    다시 보니 못 봤던 것들이 참 많았다.

    똑같은 평양냉면인데 이제는 평양냉면의 맛을 알게 된 거지 뭐.

    # 장진영 그리고 조제

    뭐 대부분 봤겠지만,

    안본 사람을 위해 요약하면,

    김승우는 약혼한 애인이 있지만 술집 여자 장진영과 파트너 관계를 맺으며 양다리.

    김승우 엄마한테 이 관계가 걸리고 억지로 결혼을 한다.

    신혼여행 가서 김승우가 장진영에게 전화를 한다.

    오늘 첫날밤이네?

    내가 영훈씨랑 수경이년이랑 떡치는 생각을 해봤는데, 이상하게 질투가 안나.

    그런데 둘이서 나란히 누워서 침대에서 다정하게 누워서 얘기하는 것을 상상하면,

    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애.

    이해돼?

    대답을 안하네 씨발.

    그러니까 내말은 둘이서 얘기는 하지 말고 냅다 떡만 치다 오라고!!!

    이 관계에서 연아 -장진영-이 줄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장 함축적인 대사 같다.

    결혼 후에도 뭐 영훈 -김승우-는 이중생활을 영위하다가,

    당연히 다가올 관계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빵.

    장진영은 김승우 부인에게 술김에 관계를 얘기하고,

    김승우는 뭐 Jot되어 버렸으니 가서 장진영을 두들겨 팬다.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와이프한테 전화를 한다.

    아냐, 괜찮아 괜찮아 내가 들어가서 자세히 얘기할테니까.

    오빠 믿어. 걱정하지마 수경아.

    .....

    사랑해 수경아...

     

    그걸 본 친구가 한 마디 한다.

    'SiBal 쉐끼 진짜 사람 아니네. 그래도 이 대목에서 수경아 사랑해는 빼야지'라는 말에 김승우는 소리 지른다.

    '몰라 Sibal 노마 그럼 어떻게 하라고!...!...!.....'

    14년 전에 머문 내 기억에는 아 김승우 그냥 여자 등 처먹는 쓰레기인데 이래저리 꼬인 것이고,

    또 뭐 하나 제대로 선택도 못하는 찌질이 정도에,

    장진영은 비극의 주인공이구나 정도로 기억했었는데,

    지금 보니 좀 다르네.

    옛날과 달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김승우 쓰레기네라는 말이 쉬이 나오지 않네.

    김승우는 그냥 진정한 사랑이겠지만 술집 여자라는 사회적 주홍 글씨를 가진 여자를 선택할 수가 없을 것이고,

    '술집 여자'라는 부분은 또 다른 무엇인가로 치환이 될 수 있는 것이기에.

    예전엔 크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줄 하나에 매달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끌고 올라올 수도 손을 놓아버리지도 못한 채 매달려,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걸 고스란히 전해지는 영화였네.

    연아는 진절머리 나는 관계를 끝내고 시골로 내려가면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화면이 바뀌면서 어느덧 영훈 -김승우-는 연아 -장진영-을 찾아가보는데,

    연아는 정말 쌈마이 같은 단란주점에서 술 마시고 나와 토하고 있다가 눈이 마주친다.

    영훈은 멀리서 복잡한 감정으로 밀려나온 눈물을 쏟으며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끝나.

    뭐랄까 문득 든 생각은 이 영화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좀 더 질척이고 거칠고 혼탁한 한국판이였구나.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와 대학생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나름 사랑에 관한 슬픈 명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말이다.

    예전에는 연결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또 데자뷔처럼 두 영화가 서로가 서로를 떠오르게 한다.

    츠네오 -츠마부키 사토시-는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와의 짧은 사랑이 저물고 이별을 한다.

    담담하고 깔끔하게.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그리고 1년 후 길을 걷던 츠네오는 길에서 갑자기 오열을 한다.

    그리고 혼자 남은 조제는 혼자서 생선을 굽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나저나 한지민이 조제로 나오는 한국판 리메이크가 12월에 나온다는데.

    워낙 원작이 강적이라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 클래식을 봐야 하는 이유랄까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나름 나에게 클래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14년이나 지났는데도 이렇게 다르게 다가오면 말이다.

    어떤 작품이 현재를 넘어 계속 살아남기 위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다의적'이어야 한다.

    어떤 천재는 한 번에 다의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 축에 따라 나이 먹음에 따라 작품을 다의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무슨 소리냐고?

    아기 공룡 둘리를 떠올려보자.

    어렸을 고길동은 나쁜 놈이고 둘리는 우리의 친구!

    그런데 지금 보면,

    우와 고길동은 진짜 보살이다.

    관대하다!

    '관대'킹 고'관대'다.

    어렸을 때는 둘리 그리고 고길동에 대해 다의적으로 볼 수 없었지만,

    시간의 빗면을 타고 온 덕분에 보인다.

    고전의 다의적인 가치를 얻으려면 시간대에 따라 동일한 작품을 읽어봐야 할 것이다.

    거기로부터 받은 가치의 변화분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가치다.

    고전은 그대로다.

    고전이 다르게 다가오면 내가 변한 것이다.

    과거 나의 시간에 따른 Difference 인지하는 것.

    수학적으로 미분 공식이겠군.

    그리고 그것을 수학적인 농담으로 적분하면,

    미래에 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일종의 인문학적인 공식을 도출할 수 있을걸.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길어졌지?

    여튼,

    결론은 나는 사람들과 얘기할 때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John 10000 E인 줄 알았는데,

    이런 다의적인 작품을 다시 보면 나름 늙거나 숙성하고 있는 John 10000 E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결론이 되는 건가?

    여하튼 그러하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