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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접관으로서, 여러 나라 후보자들의 면접 경험 그리고 씁쓸한 아비투스
    일반 정보 2024. 1. 26. 06:39
     
     

    #면접관

    면접관으로 쉴 새 없이 면접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 포지션 면접관으로는 당연히 들어가지만,

    아시아 쪽 글로벌 포지션의 기술 면접관으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한국 포지션이 아니라도 아시아 쪽 지원자들의 1차 면접을 보는 역할도 하고 있다.

    대부분 인도 포함 동남아 쪽이다.

    동유럽에 있던 덴마크 사람, 아부다비에 있는 인도 사람, 싱가포르에 있는 남미 사람 같은 특이한 경우도 많다.

    한국 사람 면접은 좀 마음이 편하다.

    머리 굴릴 필요 없이 한국말로 그냥 편하게 이리저리 진행하면 된다.

    반면 어려운 점은 다들 괜찮아 보며 특별한 단점이 안 보이다 보니,

    후보자들을 추려내는 게 어렵다.

    그렇다고 다 패스하면 외국인 디렉터가 한 소리 한다.

    "뭐야 나보고 다 하라고?" 식으로 말이다.

    반면 외국인은 너무 배경이 다르니 참 난감하다.

    우선 학력?

    아예 보지도 않게 된다.

    다양한 나라의 대학을 내가 하나하나 알리기 없지.

    # 인도네시아 후보자

    인도네시아 쪽 사람 면접을 본 적이 있다.

    후보자들마다 같은 스킬 셋이라도 어필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인도네시아 지원자 TH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굉장히 자주 언급하고,

    학교에서 했던 과제와 연결하여 현재 하는 일을 연결 지어 어필을 많이 하더라고.

    나는 그렇구나 하면서 대충 이력서의 학력란을 봤지만,

    도무지 모르는 학교였다.

    인도네시아 대학을 내가 알 리가 없으니 말이다.

    면접이 끝난 후 상세히 검색해보니 나름 인도네시아 최고 공대고,

    우수한 졸업생들이 많이 배출하는 했더라고.

    그런 학교 있잖아 졸업생들이 첨단 IT 쪽을 이끄는 그런 사관학교 같은 곳.

    곰곰이 생각해봤지.

    인도네시아 인구가 대략 2.7억 명이라는데,

    인구 5천만 명인 곳에서도 최고 명문대 나와도 천재라고 치켜세우는데,

    2.7억 명의 나라에서 명문대 나온 TH는 그 나라에서 천재 소리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옥 불반도 사는 코리안이 수준 낮은 질문을 하고 있으니 속으로 어이없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에이 몰라 꼬우면 면접관 해라고 그냥 합리화해 버렸지 뭐.

    한국 사람 면접 보는 것은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특별히 평가자의 자세가 아닌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질문 하나하나 그리고 대답하는 방식에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보게 된다.

    왜냐하면,

    외국인 지원자는 도무지 어떤 사람이 감이 안 오기 때문이다.

    나도 모국어로 안 하고 상대도 모국어로 안 하는 것이니 뭐 감이 안 오니,

    상대를 알기 위해 오히려 태도나 말투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게 된다.

    # 인도에 대한 악명

     

    지원자 중에 유독 인도 사람이 많다.

    내가 속한 부문 쪽이 인도 라인이라 그렇다.

    아시아 쪽은 차상위 매니저에 인도 사람이 많긴 하다.

    최상위 매니저들은 또 유럽이나 미국 쪽 사람이고 말이다.

    인도 사람과 일하는 것에 대한 고충을 많이 듣는다.

    인도 사람과 일을 많이 했었는데,

    아직까지는 운이 좋았는지 등에 칼이 꽂힌 경험은 없다.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정말 정말 많은 분들이 인도 사람과 일할 때 주의사항이나 힘든 점에 대해 그윽한 눈으로 얘기해 준다.

    “언제나 뒤를 주의하시오!”

    “방심하는 순간 등에 칼이 꽂혀 있을 것이오!”

    “말로는 다 된다고 하고 막상 확인해 보면 아무것도 안 되어있다.”

    “공은 다 가로채려 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 회피와 덤터기를 씌우려고 한다.”

    정말 10번은 넘게 들었다.

    하지만,

    면접 때는 딱히 걱정 안 하는 편이다.

    내가 인도 후보자들의 성향을 몰라서 그냥 괜찮은 것 같아서 패스해 줘도,

    다음 단계에 수문장처럼 있는 인도 디렉터와 본부장 급 인도 사람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인도 사람이라 잘 아는지 매우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후보자들은 레퍼런스 체크를 하는지,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면접 취소하고 “이 친구는 블랙리스트 해놓았으니 면접 안 해도 됨”이라는 통보도 온다.

    여하튼,

    아직까지는 그다지 인도 사람과 일하는 것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고,

    계속 없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많은 인도 지원자들을 면접하다 보니,

    미묘한 계급이랄까.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 출신에 대한 미묘한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 상류층?

    한국은 아직은 빈부의 격차가 인도보다는 크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재된 계급 고유의 특성 차가 없어서인지 이런 구별짓기 같은 계층 차가 확연히 다가오진 않는다.

    뭐 외제차 혹은 어디 사는지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오 좀 사네’ 같은 것은 구별할 수 있으지라도.

    똑같은 명문대 사람들을 쭉 놔두고 얘기를 한다고 이런 계층적인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나?

    지극히 협소한 경험이지만,

    인도 친구들을 면접을 하면서 같은 인도 최고 공대라도,

    어떤 친구는 아 정말 상류층 출신인가라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인식을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좀 좋은 계급 친구는 뭐랄까 미묘한 자신감과 여유가 있다고 해야 하나.

    내가 들어가는 면접 자리는 인도에서 있는 친구를 인도 밖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이다.

    인도 사람 기준에서는 싱가포르이든 홍콩이든 한국이든 해외 진출이다.

    인도를 벗어나 해외로 나고 싶은 지원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다 보니 면접 때,

    몸에 힘이 단단히 들어간다.

    자기가 해왔던 것들 장점들을 너무나 지나치게 어필하는 사람이 많다.

    어필하는 것은 좋은데 박찬호 간디판 마냥 자기 얘기를 끝없이 한다.

    면접관인 내가 정말 질문할 시간 적 틈이 안 나올 정도다.

    내가 중간에 몇 번씩 끊어줘야 할 일이 많다.

    또한 경력 상 안 해봤을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 질문한 경우.

    예를 들어,

    특정 배역을 뽑는 상황으로 비유하면,

    “후보자는 혹시 연쇄살인마 역을 해보셨습니까?”라고 내가 물어보면,

    “제가 연쇄살인마 역을 직접적으로 안 했지만, 그렇다고 안 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2015년에 했던 형사 배역의 심리를 보면 연쇄살인마의 근본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배역을 해 보셨나요?"

    "2017년에 연쇄 살인마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죠"

    "그러니까 안 해 보셨다는 건가요?"

    꽤나 자주 이런 상황을 접한다.

    한국 후보자들은 그냥 안 했던 것은 대부분 안 했다고 하고,

    적극적인 분들은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정도로 어필한다.

    반면 많은 인도 후보자들은 약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건지 이런 부분을 언급하면 엄청나게 방어적이다.

    # 호오 있는 집 자식?

     

    그러다가 소수 눈에 띄는 인도 후보자들이 있다.

    MM이라고 부르겠다.

    MM 면접 자리에 들어가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했었다.

    MM은 뭔가 여유로운 자세와 적절한 속도로 본인의 이력을 간단하게 요약을 한다.

    뭐랄까 굉장히 팩트 중심으로 얘기를 했다고 해야 하나.

    보통 인도 쪽 후보자들은 모든 것은 내가 했다며 무용담 위주라,

    늘 어느 타이밍에 말을 끊을까 고민한다.

    오히려 MM은 간단 명료하고 포인트만 딱딱 대답해 줘서 내가 더 당황했다.

    사실 머리부터 옷까지 무척 깔끔하고 영어도 인도 억양이 적었던지라,

    꼭 양복을 입으라는 법은 없지만 양복 안 입고 면접 들어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지라,

    멀끔하게 입은 게 더 신기했었다.

    속으로 뭐야 도련님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

    본인이 못해보거나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너무 깔끔하게 인정하더라고.

    기존 인도 면접자들이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나는 마이너스를 주진 않는다.

    워낙 해외 이직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이고,

    나도 해외 취업하고 싶을 때 몸에 힘이 참 많이 들어갔었거든.

    절실한 자리라면 약간 압박이 크게 다가오기도 하고 말이다.

    여하튼 이 친구는 상당히 여유가 있다.

    여유라.

    많이 가진 자가 도박에서 더 많이 걸 수 있다.

    적게 가진 자는 더 안전하게 건다.

    아비투스 | 도리스 메르틴, 배명자 저

    그래서 이 친구가 해외에서 일한 경력이 많은 줄 알았다.

    “너 해외에서 일한 적 많니?”라고 하는 말에,

    “아니 나 인도에서만 일했는데”

    “아 그렇구나, 그럼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 있어?”

    “어, 나 해외에서 무척 일하고 싶다. 한국도 굉장히 가고 싶다”

    뭐 여하튼 워낙 면접도 잘 봤지만 스킬셋도 딱 맞아서 나는 뭐 1차에선 합격 목걸이를 줬지.

    마무리하며,

    “너 혹시라도 한국에서 일할 수도 있는데, 너 한국에 대해 아니” 물어봤었다.

    “어 그냥 아버지가 정부 쪽 만남 때문에 한국에 갔다 오실 때 얘기 들어서 안다”라고 하더라고.

    호오,

    뭐 외교관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 자제분인가 했지.

    여기까지는 별거 없었는데.

    # 글로벌하게 연결된 인맥

    면접이 끝난 후 며칠 후에,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갑자기 왔다.

    “브로, 혹시 MM이라는 인도 친구 알아?"

    “엥?”

    한국에 있는 지인 입에서 얼마 전 면접을 본 인도에 사는 MM 얘기가 나오니 어이가 없었다.

    "뭐야? 넌 인도에 있는 MM을 어떻게 알아?"

    들어보니,

    자기 MBA 시절 동기가 있다.

    그 동기의 어릴 때 친구가 MM이다.

    MM이 한국 쪽에 정보를 위해 본인의 풍부한 인맥을 통해서 내 지인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호오.

    근데 지인은 미국에서 탑 급 MBA에 출신인데,

    MBA 동기가 인도 여성이거든,

    그렇다면 그 여성분도 인도 기준에서는 잘 사는 것이겠지.

    그리고 MM이 MBA 인도 여성의 어릴 때 친구라는 것은 끼리끼리 놀았다는 뜻일 테고.

    마침 구별짓기, 각종 자본에 관한 얘기를 쉽게 풀어써 놓은 아비투스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문화자본: 선망과 존중을 받는 코드와 취향. 몸에 밴 고급문화와 탁월한 사교술이 고전적 문화자본이라면 주의 깊고 한결같은 생활양식 혹은 용기 있는 기행(奇行)과 개별성이 새로운 트렌드의 문화자본이다.

    .

    사회자본: 누구를 아는가. 개인이나 집단과 얼마나 잘 지내는가. 든든한 가족, 훌륭한 롤모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맥, 진정성 있는 멘토, 결정권자와의 친분, 서로를 격려하는 동료, 영향력, 권력, 가시성.

    아비투스 | 도리스 메르틴, 배명자 저

    우리나라에는 이렇게까지 구별짓기 계층화가 와닿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개인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한 수준-

    많은 인도 지원자들 면접하면서,

    이런 계층 간의 선들이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 안될 만한 선들- 어렴풋이 와닿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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