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징어 게임을 찍을 수 있게 해준 넷플릭스, 그리고 드는 나의 일일반 정보 2024. 1. 19. 09:20
#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나 볼까’
전 지지는 소리와 기름 냄새가 그윽하게 올라오는 처갓집에 ‘백년손님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뒹굴뒹굴하다 심심했다.
시대정신에 맞게 부엌일을 거둘 수 있으나,
미숙한 내가 설치고 있으면 와이프 혈압이 오른다.
내가 집안일을 +1을 하기 위해 나서면 -2가 된다.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용어가 있다. 베트남전쟁에서 일어난 민간인 살상을 두고 미군이 쓰는 완곡한 표현이다. 여기엔 ‘어쩔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핑계가 깔려 있다.
설거지하다가 그릇 깨기 같은 류 말이다.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회의처럼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으련다.
“뛸 사람은 뛰어라. 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
사람들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덜 닿는 소파 코너에 몸을 기대고 아이패드를 연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기대는 별로 없었지만,
또 신세계 이정재 형님이 나오지 않나.
바로 스타트.
그리고 정신 차리니 시간이 후루룩.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드라마에 이렇게 몰입할 줄 몰랐다.
스릴러나 SF 등에 대한 갈증은 어둠의 경로로 구한 미드가 채워줬다.
DP도 그렇지만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다루다니.
당시 한국 드라마도 출생의 비밀만 보면 흡입력이 장난 없는 엄청난 스릴러이긴 했다.
아니 우리 아버지가,
아니 우리 아버지의 전부인이!
아니 내 애인이 알고 보니.
어랏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고?
심지어 나의 시어머니가 이제는 나의 며느리도 있었더랬지.
이걸 떠올리다 넷플릭스에 터져 나오는 한국 스릴러를 보면 놀랍다.
너네 이렇게 잘 만들 수 있는 놈들이었어?
난 미드를 보며 감동할 때엔,
한국은 영원히 이런 작품은 못 만들겠지 냉소를 하면서 보던 기억이 나네.
지금은 넷플릭스 크아 국뽕에 취한다.
킹덤 시나리오를 쓴 김은희 작가의 예전 인터뷰가 떠오른다.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와 작업하며 ‘창작자에 대한 존중’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녀는 “창작자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대본에 큰 간섭이 없어 당황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영화 <옥자>에 연출부로 참여한 B는 “투자자가 내용 수정을 요구하는 일은 빈번하다. 창작자로서 유쾌한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와 작업할 땐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자유로웠다. 음식과 숙소도 좋았다. 스케줄도 무리 없이 운영돼 현장이 수월했다”라고 말한다.
판 깔아주니 날아다닌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창의력의 부재가 아니라 주변에 부채 들고 완장질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고.
넷플릭스가 너네 하고 싶은 대로 다해라고 해주니.
유교 탈레반 치하에 머릿속에 간직했던 소중한 변태적인 상상들을 카메라에 구현화하기 시작하는구나.
소재가 워낙 다양하니 이야기의 스펙트럼도 참으로 넓다.
오징어 게임만 봐도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런 스릴러를 만들 수 있었네?
넷플릭스 자체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려는 플랫폼라서 그러겠지만.
최근 넷플릭스로부터 작품 제안을 받은 영화감독 C는 그들의 등장이 한국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거라 말한다. “제작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아이템에 넷플릭스가 관심을 가졌다. 제작비도 많이 들고 마이너한 코드의 소재라 오래전 마음을 접은 작업이다. 그것 말고도 여러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더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채널이 생겼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기회다.
# 외국계가 하는 한국 프로젝트
오징어 게임 저네는 군대 PTSD 대량 제조기 D.P는 또 어떠한가.
근데 정말 너네 DP 보고 PTSD 오는 거냐?
내가 봤을 때 정해인 얼굴과 너네는 얼굴은 전혀 중첩되는 부분이 없어서,
몰입감이 심하게 깨질 것 같은데.
PTSD 막 오다가 정해인 얼굴 보면 아 이건 현실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면서,
‘그래 정해인 얼굴이면 뭐 남자 새끼가 군대에서 좀 맞을 수 있지’ 같은 소리가 나올 법하다.
어쨌든,
PTSD를 외칠 정도로 군대에 관한 적나라한 얘기를 다룬다는 것은,
국방부 나라님들이 심기를 상당히 거슬렸다는 뜻이다.
만약 D.P가 넷플릭스 스타일로 전편을 한 번에 뚜악 하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공중파처럼 1화, 2화 순차적으로 나왔다면.
과연 나왔을까 싶다.
공중파에서 1화 방영되자마자 온갖 압력이 들어가며 시나리오 수정 등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소재도 그렇고 방영하는 방식도 그렇고 한국적인 관행에 상당히 반하는 부분이 많다.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면 막대한 제작비와 실험적 시도 탓에 나오기 어려웠을 한국형 좀비물 ‘킹덤’은 넷플릭스가 대규모 제작비를 쾌척하며 탄생했고 흥행에 성공했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
DP, 오징어 게임을 보다 넷플릭스가 소위 관행이라는 것에 갈긴 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외국계에서 한국 프로젝트를 하는 내 상황이 떠오른다.
나는 현재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한국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말이 외국계지 한국에 거의 첫 진출인지라 한국화가 거의 안 된 외국계다.
문제는 중간에 있는 나다.
나는 중간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 흉내며 한국 고객과 얘기하다가,
본사 외국인들에게는 척화비 세운 흥선대원군 마냥 ‘조선에 왔으면 조선의 법도를 지켜라’를 외친다.
‘디스 이즈 코리아 스타일!’이라면서 설득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고객 입장에서는 ‘아 이 쉐이들 빠다 냄새 안 빠졌네’로 보일 것이다.
초기에 나는 본사 쪽 아시아 헤드와 글로벌 헤드한테 ‘한국에 들어오려면 한국식으로 영업해야 한다’를 주장했다.
당연히 아시아 헤드 입장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엄연히 있고,
회사가 전 세계에게서 참고할 만한 프로젝트 경험이 있기에 검증된 효율적인 방식이 있는데,
도대체 얘는 왜 자꾸 한국식 비즈니스에 대해 주장하나 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의 바닥을 너무 잘 알기에 너무나 당연히 ‘니네 한국 스타일 못 맞추면 우린 못 들어와’를 주장했었다.
게다가 한국 비즈니스 첫 삽을 뜨냐 마냐 하는 상황인지라,
나는 초조했다.
무조건 코리안 스타일을 다 맞춰줘야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으로 출장 오지 못한 매니저들은 내 의견을 많이 반영해 주었다.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그 양반들은 ‘코리아 스타일? 아 이거 아닌 것 같은데’ 갸우뚱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한국의 비즈니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직속이었던 아시아 헤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글로벌 스탠더드 방식을 주장했었어, 비록 한국 관행을 따르겠지만 여전히 걱정된다’라고 했었다.
지금 위스키 한 잔 마시며 아시아 헤드 그녀를 떠올린다.
‘아…당신은 어디까지 내다보신 겁니까…’
# 다시 드는 의문들
DP, 오징어 게임처럼 그동안 한국 관행을 안 따라도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한국 비즈니스는 언제나 코리아 스타일로 일하는 게 맞나 의문이 든다.
우리 회사는 금융컨설턴트와 글로벌 솔루션 커스터마이징하는 회사다.
나도 태생이 금융인지라 컨설턴트나 SI 등은 업력이 길지 않기에,
한국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업계 선배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결론은 뭐 코리아 스타일이라는 게 있고 당연히 코리아 스타일로 해야 한다고 한다는 거다.
외국계가 와서 적응 못하고 철수한 예를 들면서 말이다.
아,
여기서 글로벌 스탠더드, 코리아 스타일의 차이가 뭐냐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 프로젝트로 비유하자면,
한국은 ‘거 주인장 기깔라게 맛있는 라면 하나 끓여와 보쇼’ 한다.
‘네? 어떤 라면 말이에요?’
‘거 당신이 잘 알 거 아냐, 그냥 죽여주는 거 하나 끓여오면 돼, 그 잘 알잖아’
그리고 끓여오면,
‘하아 이 사람 참 센스 없네, 단무지와 김치도 가져와야죠?’
‘거 찬밥도 있으면 좀 가져오시고’
이게 코리안 스타일.
글로벌 스탠다드 스타일은,
‘진라면 순한 맛을 양은 냉비에 3분 32초간 끓여오세요. 면은 정확히 한 번만잘라야 합니다’
‘라면을 가져올 때 단무지는 12개, 김치는 깍두기로만 구성해 주세요. 숟가락과 젓가락은 모두 쇠 재질로 주시고요.’
‘아, 찬 밥 추가하신다고요? 700원입니다’
그러면 반응이 보통 이렇지.
‘아, 거참 야박하게 이런 거 하나하나 돈 받고 이거 왜 이래? 나 쌍스러운 사람 만들 거야?
이 코리아 스타일이라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해보니 뭔가 안 맞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쭉 이어온 전통적인 관행인 것인지.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결혼에 관한 이런 격언을 들어 봤을 것이다.
얼굴은 3년 간다 어쩌고저쩌고.
난 이 옛말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미인이 상대적으로 희귀할 텐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미인 남편들이 검증해 준 거지?
비가 ‘흐음, 얼굴은 3년 가네요’라고 하면 난 당연히 믿겠지만 말이다.
프로젝트에서 코리아 스타일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얘기하면 ‘한국은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하는데,
당장 궁금한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진행했다가 크게 망친 사람이 하는 말인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프로젝트 관점에서 어떤 게 더 효율적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본사에서 밀어붙이고자 했던 글로벌 스탠더드는 직원들의 영혼을 갈아서 만드는 프로젝트 관행을 막고자 했던 것 같다.
고객이 원하는 요건을 두리뭉실하지 않게 야박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받아서,
우리가 나미가 이런 거 말고 정확한 R&R(Role & Responsibility, 역할과 책임)을 바탕으로 업무량을 산정하여,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 말이다.
외국계가 근태가 자유롭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정확한 목표와 정확한 R&R이 있으니 본인 시간을 조절하며 할 일을 수행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니 휴가나 근태 가지고 태클 걸지 않는다.
이런 목표와 R&R이 모호하면,
그냥 일찍 출근하고 야근 오래 하는 것으로 승부하게 되는 것 같다.
‘오 그 친구는 일찍 일어나고 야근을 하던데, 열심히 하는 친구야. 노오오오오력 세대’
'일반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천재의 D.P - 넷플릭스 D.P보고 군대 PTSD 체험이 트렌드? (2) 2024.01.19 인플레이션 이라더니! 스테그 플레이션은 뭐야 (0) 2024.01.19 딸천재의 관찰 - 바람과 불륜, 리스크 대비 쾌락의 가성비를 보자면 (1) 2024.01.19 오징어 게임 보다가 창의성 × X세대로 의식 흐름 따라 (0) 2024.01.19 애스워드 다모다란, 가치평가 대가가 최근에한 인터뷰 (0) 202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