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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vs 러시아 × 러시아 박사 채용일반 정보 2024. 1. 18. 02:36
러시아는 참.
인터넷에 떠돌던 러시아 관련 밈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무슨 소년만화에나 나올 만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대망의 풋인!
러시아,
어떻게 이런 나라에서 대문호들이 나왔는지 의아하다.
지금 워낙 미친놈들이 천국처럼 보이지만,
푸시킨,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이런 대문호를 보유한 나라였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 진짜 문화 강국 아닌가.
지금은 미치광이 푸틴이 러시아 첫인상이다만!
푸틴과 도스토옙스키가 어떻게 한 나라 사람이지?
물론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신문 국제란에서나 볼 얘기라서 먼 일 같았는데,
띠용 나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일이 있었다.
바로 러시아인 면접을 볼 일이 있었다.
한국인 채용도 머리 지끈 한데 러시아 사람이라니!
# 컴컴 숙식제공!
일이 많다 보니,
몇 달 전 직원 채용 공고를 냈다.
외국계 회사인지라 채용 대상이 반드시 한국인이 아니다 보니 글로벌로 채용 공고가 난다.
그래도 프로젝트 주체가 한국이다 보니 보통 가까운 나라에서 지원한다.
인도 사람이라든지 싱가포르 사람이라든지 등등.
근데 이번엔,
스탈린, 고르바초프 같은 느낌의 이름들이 보이길래,
러시아인가 했는데,
엇 진짜 러시아 사람 4명이나 지원했네?
살면서 러시아 사람을 면접 보긴 또 처음이다.
게다가 물리학 박사들이었다.
박사는 리스펙이지만,
물리학 박사는 뭐가 느낌이 다르다.
그냥 이 지구에서 제일 똑똑한 인간들이 하는 느낌이잖아.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먼, 스티븐 호킹 등등.
러시아가 지금 영 이미지가 개판이긴 한데,
기초 과학 분야가 매우 뛰어난 곳이다.
전 세계 물리학, 수학 영역에 1부 리그에 러시아 출신들이 여전히 제일 많을걸.
얼마 전 러시아 ‘신대학’ 의 총장이며 사립고등교육기관 연합의 대표자인 블라지미르 제르노프는 “아직도 전 세계의 일급 수학자와 물리학자들 중 약 절반 정도가 러시아에서 나온다”고 말하면서 “이것이야 말로 우리 조국의 얼굴이다”라고 덧붙였다.
근데 양반들이 우리 회사를 왜 지원하지?
지금은 푸틴이 남자들 잡아다가 전장에 보내서 그럴 수 있지만,
채용 공고와 면접 당시에는 러시아가 막 전쟁을 시작할 시점이었다.
흐음.
뭐 일단 그들은 금융공학자들이었다.
물리학 박사 출신 금융공학자라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러시아 주요 은행 그리고 헤지펀드에 재직하고 있었다.
아 러시아 사람들은 또 헤지펀드 업계에서 유명하다.
특히 고빈도 매매 거래 세계에서는 한국에 K-Pop 같은 이미지다.
#플래시 보이즈
헤지펀드들이 하는 고빈도 매매 거래 세계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된 책이 한 권 있었다.
플래시 보이스.
골드만삭스의 직원이었던 그 러시아 출신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그곳을 퇴사한 후 2009년 여름, FBI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그의 혐의는 골드만 삭스의 '컴퓨터 코드'를 훔쳤다는 것.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살로만 브라더스의 채권 세일즈맨으로 일한 적이 있었던 마이클 루이스는 세르게이의 절도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근무하던 '초단타매매 프로그래머'였던 그가 훔친 ‘컴퓨터 코드’는 무엇일까?
이런 이미지가 강해서,
헤지펀드 출신 러시아 물리학 박사를 면접 봐야 한다고?
면접을 많이 봤지만 이번에 특별히 긴장이 되어서,
면접 질문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이거 망신당할라.
메모지를 펼치고 하나하나 고심했던 질문을 적어내려간다.
두 유 노우 BTS?
두 유 노우 손흥민?
두 유 노우 오징어 게임?
아 또 뭘 물어봐야 하지?
흐음.
아 또 뭘 물어봐야 되나?
중요한 질문은 일단 정했으니,
우리 박사님들 긴장 풀어줄 소소한 질문들을 이어가야지,
너넨 Local vol 어떻게 뽑아내니?
Range accrual PL 가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장 데이터를 모두 나열해 보쇼.
Autocall 데스크를 빌드 한다고 할 때, IT, 비즈니스, 회계에 각각 어떤 일을 시킬 것인가.
이자율 상품의 나올 수 있는 거래 라이프 사이클 경우의 수를 모두 얘기하고 손익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아 면접 시간이네 원격 화상 회의에 얼른 들어간다.
# 뭔가 알고 있었구나
뭐 우리 러시아 박사님들 면접 뭐 프리패스지.
자 우리 러시아 형님들 원하는 조건이 뭐요.
마지막으로 원하는 조건을 물어봤다.
돈은 늘 중요하지만,
특히 원했던 것은 빠른 리로케이션이었다.
러시아를 떠나고 싶다는 거지.
앞서 말했듯 면접 볼 당시에는 러시아 징집이 없었고,
전세계 누구나 러시아가 압승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다.
왜냐하면 다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러시아 밖으로만 가면 된다는 것이었거든.
그래서,
여기 한국 프로젝트라 한국에 와야 할 수 있어 괜찮겠어 하니까.
거의 뭐...
일부 희망 연봉을 포기해서라도 러시아만 나오면 된다고?
그러다 요새 러시아 징집 상황을 보니 그때가 떠오른다.
이 양반들 뭔가 알고 있었나?
그래서 이렇게 나오려고 했던 건가? 싶었다.
요즘 러시아 상황을 보면,
그들의 판단은 굉장히 현명했다.
역시 박사는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 명이 채용됐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원격으로 한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 데리고 올려 했는데 뭐 절차가 좀 귀찮았다.
그나저나 얘들아 무슨 정보가 있었나 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갑자기 러시아 박사들 출신들이 지원 서류를 동시에 내고 말이다.
자기들끼리 커뮤니티가 있었나?
#부인을 사랑은 하시죠
아,
이 러시아 박사들 채용 과정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다.
면접일을 정하고 있었는데,
헤드헌터가 그러더라고,
이 둘은 부부입니다.
엥?
뭐 부부가 왜?
서로 경쟁자인가?
게다가 둘 다 부부 박사다.
어 둘 중 한 명만 붙이면 합격해도 안 오려나 여러 생각이 들긴 했다.
뭐 일단 부인 쪽은 능력자더라고,
고민하고 말고 할 것 없이 합격.
며칠 후 남편 면접 차례인데,
내가 머릿속에 편집증 환자 마냥 한 가지 면접 질문만 떠올라서 집중이 안 되더라.
그게... 뭐였냐면...
아돈 빠가돈?
(그래도 사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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