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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 도는 패션 × 뉴트로? 그리고 이게 유행일 줄이야
    일반 정보 2024. 1. 19. 08:55
     
     

    # 패션은 돌고 돈데

    청바지 하나 정도는 필요했다.

    나는 패션에 남다른 철학이 없기에,

    매장에 들어가기 앞서 마네킹 룩을 살펴본다.

    패션 업계 직장인들이 나처럼 윗사람 갈굼 당하면서 야근하며 엄선해 놓은 제품들이니 고민 없이 골라야 하지 하는 마음에.

    근데 어랏? 지금 이게 유행이라고?

    아니 이건 뭐 세기말 패션도 아니고 갑자기 이 넓디넓은 바지통은 뭐지.

    내 기준에 건축학 개론 납득이 패션 같은 거.

    내 기준에는 오래전에 유행이 휙휙 지나서 좀 촌스러운 단계를 넘어 소멸된 패션들 말이다.

    그런데 다시 유행이래.

    그것도 그럴싸한 뉴트로라는 이름이 붙어서 말이다.

    이 스타일을 소화했던 30~40대 밀레니얼 세대는 ‘촌스럽다’며 강하게 거부하지만 10~20대 Z세대는 열광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30~40대가 입던 브랜드를 최근 10~20대가 다시 입는 셈”이라며 “4050세대가 1970년대의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은 알지만,

    정말로 체감하기까지는 오래 걸린다.

    패션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만나면 어느덧 늙수그레해지니 말이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몇 해간 인기를 끌던 스키니진은 사라지고 부츠컷이나 통 넓은 청바지, 짙은 생지 데님, 상하의 청청패션 등 2000년대를 떠올리는 스타일이 돌아왔다”면서 “Y2K 패션의 재등장으로 당분간 복고풍 패션 스타일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돌고 도는 그 패션이라는 것의 2회차를 지금 내가 목격하고 있구나.

    일단 아놔 진짜 늙고 있네부터 떠올랐지만,

    우선 어랏…이게 진짜 다시 유행할 수 있는 거야?라는 의심부터 든다.

    진짜 촌스러운 것 같은데,

    뉴트로란 이름으로 뜨고 있다고 하니 믿어야 할 것 같고.

    # 멋의 기준이란 게 참

    새삼 패션 업계라는 비즈니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마저 든다.

    왜 정보통신 분야는 더 앞서가는 기술이란 게 굉장히 명확한 기준이 있잖아.

    반면,

    패션은 십몇 년 만 지나도 소비자들의 기준점들이 이렇게나 바뀌는데 말이다.

    대표적으로 나는 2006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의,

    베스트 드레서 조인성과 워스트 드레서 류승범 짤을 볼 때 크게 느껴쪘다.

    2006년 베스트 드레서를 뽑힌 조인성의 패션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당시 호오 역시 조인성일세 했거든.

     

    반면 류승범은 워스트 드레서로 뽑혀였는데.

    엇, 바지를 저렇게 하고 운동화를 신는다고?

    ‘좀, 특이하군’ 정도로 인식했었다.

    나는 오히려 패션에 민감하지 않았기에 ‘좀, 특이하군’으로 넘어갔지만,

    패션 센스가 좋았던 사람들은 으악 눈 버렸네 같은 거부감을 보였던 게 기억난다.

    아마 당시 나보고 선택하라면 망설임 없이 조인성 스타일을 입었을 터.

    그런데 지금 보니 조인성 으악! 너 무슨 짓 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멋에 대한 기준이 바뀐 거잖아.

    누가 나를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나는 패션 업계 종사자도 아니라서 패션의 흐름을 예민한 게 쫓는 사람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계기로 지금은 류승범이 훨씬 세련되었을까.

    # 그러네 패션은 돌고 돈데

    팔자가 사나워서 살면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이다.

    인생을 즐기고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타입인지라,

    일이 많아도 일상과 균형점을 적절하게 가져가며 느슨한 삶의 리듬을 가져간다.

    근데 이게 마음대로 안되네.

    여의도에 더 서울 현대가 생긴 이후,

    점심시간에 산책하듯 에어컨 바람 쐬러 가게 된다.

    자주 가게 되다 보니 명품 매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뭐 살 돈은 없다만 구경은 공짜니.

    그중에 프라다와 구찌를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프라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그 프라다.

    90년대 말 정말 아래 백 진퉁, 짝퉁 할 것 없이 거리에 넘쳐났었다.

     

    명품인데 희한한 나일론 소재에 삼각형 뚜악!

    명품 하면 가죽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시기라,

    ‘아니, 나일론에 이 돈을 태워?’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그런데 프라다가 어느 순간부터 거리에서 여성들 등에서 슬슬 사라지고,

    프라다 백팩을 들면 우리 주식 매매 패턴 마냥 끝물 잡은 사람 느낌이었다.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 하듯 짝통까지 활개치며,

    애매한 이미지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프라다의 존재감이 옅어지며,

    차가운 엔지니어 피를 가니 내 기억에도 딱히 메인스트림 명품이라는 기억에 안 남는 지경이 되었지.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프라다가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현대 백화점에도 꽤나 매장이 크게 들어앉아기 시작하네.

    이렇게 보면 명품 비즈니스도 알아서 다 사줄 것 같지만,

    명품 리그 안에서 패션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꽤나 치열하다.

    반면,

    그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는 브랜드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구찌.

    구찌 네가 어쩌다.

    # 꼰대들이 쓰기 시작하면 끝났지

    인터넷 유행어나 밈의 수명.

    그거 언제 유행 끝나는지 우리는 안다.

    정치인이라든지 공공기관 홍보물에 나오기 시작하면,

    사형선고다.

    유행어나 밈은 젊은 세대에서 윗세대로 가면 끝물인데,

    명품을 보면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명품 주 타깃층인 40~50대들이 입고, 들고, 신던 게,

    점점 주름 없는 젊은 세대 손에, 발에, 몸에 걸치다가,

    10대까지 가면 한 사이클 돈 느낌이랄까.

    전문가는 아니지만 구찌가 그런 느낌이 든다.

    구찌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프랑스 칸느 여행 때였다.

    칸느? 칸, 그 영화제 말이다.

    오래된 일이긴 한데 내 기억 속에 있는 칸은 딱 아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중해에 오래 살았을 법한 햇볕에 익숙한 피부색을 가진 어느 노년의 여성이,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세월을 머금은 구찌 가방을 들고 당당하게 걷는데,

    와 이래서 명품이구나 싶었다.

    그 이후 점점 구찌의 연령대가 낮아지더니 흐음.

    여하튼 이미지가 좀 뭔가 애매해졌다.

    특히 일진 패션 일러스트에 한 장면으로 떠올리는 경지까지.

    딱히 명품을 살 일이 없지만,

    점심 먹으러 더현대 갈 때,

    구찌 매장을 지나가면 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니 구찌는 얼마나 억울할까 싶다.

    아,

    청바지 하나 사려다 어쩌다 구찌까지,

    결국 패션이 다시 도는 것으로 나이 먹음을 깨닫는 하루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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