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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천재의 혼술 - 위스키계의 홍어, 피트향 위스키 3대장
    일반 정보 2024. 1. 20. 02:31
     

    # 집에서 술이라니

    코로나 전에 집에서 혼술 하는 얘기를 들으면 의아해했다.

    내가 외향형인 사람이라서 그런가,

    술은 집 현관 문밖에서 진탕 칠렐레 팔렐레 마시는 거지,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것은 뭔가 사연 있는 것 같잖아?라고 생각을 했었다.

    씨앙 코로나 시대가 활짝 열리고,

    회식과 저녁 약속들이 없어지다 보니,

    간의 알코올 해독 스킬을 딱히 사용할 일이 없어지더라.

    참고로 나는 ‘술 자체가 아 맛있다 파’는 아니었더라.

    집에서 소주? 전혀 손이 안가네.

    나가서는 무조건 폭탄으로 먹는데.

    집에서 치킨에 맥주?

    나가서 생맥주 계속 부어대지만 집에서는 차라리 콜라에 먹고 싶어.

    와인 여성이 끼어있는 자리에서는 쨍하고 술잔 부딪치지만,

    집에서는 머리 아파서 먹기도 싫어.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어랏 이거 슬슬 술을 마시고 싶네.

    집에서라도.

    소주는 안 땡기고, 맥주는 배부르고, 와인은 머리 아프면.

    남은 위스키 아니겠어.

    내가 집에서 유일하게 즐기는 술을 뽑으라면 위스키다.

    위스키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냥 마니악 하게 딱 마시는 위스키가 있다.

    위스키 중에 싱글몰트,

    그리고 싱글몰트 중에 아일라 섬 태생 피트향 가득한 위스키 3총사다.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처음 마셔보는 사람은,

    나랑 친하면 ‘아씨 이거 뭐야 퉤퉤, 이거 상한 거야? 이거 냄새랑 맛이 왜 이래?’라고 하고,

    좀 예의를 지키는 사이면 ‘하하…독특하네요, 저는 조금 안 맞아서 다른 걸로…’

    라프로익, 라가불린, 아드벡이다.

    어떤 술인지 궁금하면 역시나 유튜브에 줄줄이 나온다.

    제목도 라프로익 마시고 욕한 썰 ㄹㅇ 이렇다.

     

    # 라프로익 첫 만남

    얘들이 맛이 희한한 이유는 ‘피트향’ 때문이다.

     

    이렇게 생겼는데 안타깝게 석탄이 아직 되지 못한 식물 퇴적층이다.

    이 피트향을 원료에 입힌 후에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다.

    맛이 진짜 희한하다.

    독주가 원래 좀 넘기는 게 힘들지만 요건 또 굉장히 특이한 느낌으로 힘들다.

    Love or Hate라고 인이 배긴 애들은 홍어나 고수 마니아 마냥 이것만 찾는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위스크 피트충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아래와 같은 유머러스한 피트 입문기가 있을까.

    나도 굳이 따지자면 피트 길만 걷는 사람이랄까.

    피트향에 맛 들이면 다른 위스키가 너무 밍밍한 향이라 뭔가 좀 헛헛한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아메리카노 먹으면 뭔가 맹맹한 느낌 같은 것 말이다.

    #Hate or Love

     

    나는 어쩌다 피트길을 걷게 되었지?

    런던에 잠깐 있을 때,

    거기 영국 애들과 위스키를 한 잔 먹을 일이 있었다.

    누군가 추천했던 거 같다.

    ‘이거 마셔봐야 해!’라는 느낌으로.

    당시에 뭐지 이거 왜 술에서 이런 맛이 나지?

    전설의 전두엽, 측두엽 브레이커 캡틴 큐 같은 술만 마셨던지라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나? 싶었다.

    게다가 싱글 몰트위스키 같은 게 유명하지 않은 때라 더더욱 맛이 너무 강렬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잊고 있다가 회사에 들어왔는데,

    런던에 오래 생활하신 팀장이 회식 자리에 라프로익을 들고 오시며,

    ‘크아, 강렬한 피트향을 한 번들 경험해야지!’

    지금처럼 싱글 몰트가 유명하지 않은 시기라 다들 어리둥절했고,

    한잔 딱 마시는데 다시 한번 이 강렬함.

    잊었던 강렬한 펀치감이 혀 위에서 탭댄스를 추고,

    식도로 넘어갈 때 식도 별을 드르륵 긁으면서 넘어간 후,

    식도 깊은 곳에서 강렬한 소독약 같은 향을 코 끝으로 쭉 올려주었다.

    그런데,

    와 묘하게 매력적인 거야.

    저 위의 위스키 순서도에서 나는 ‘8-a 뭔가 탄 맛이 있는 것 같은데 기분 좋은 미역과 굴의 향이 난다. 가볍고, 맛있다’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피트킬만 걷게 된다.

    굳이 찾아서 사 먹지는 않았지만,

    바에서 폼 잡으면서 한 잔 마시긴 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주인공도 아니고 병째로 사서 집에서 먹기는 뭔가 그렇잖어.

    그랬었는데,

    코로나 시대 술자리 없는 집콕 이후에는 데일리 위스키 하게 된다.

    벌써 라가불린(Lagavulin) 한 병은 다 마셔가고,

    아드벡(Ardbeg) 10년은 개봉한지 좀 되었다.

    딸내미가 잔소리를 좀 하는데,

    병 마개를 여는 순간 그 괴이한 냄새가 확 퍼지기 때문이다.

    ‘아빠 또 그거 마셔, 나무 냄새나는 거’

    #본격적으로?

    코로나가 길어지니 위스키 혼술 기간도 같이 늘어나면서,

    위스키외에 부차적인 것들을 사게 된다.

    우선,

    집에서 혼술 하다가 절제력을 잃을까 봐 칵테일 계량 지거도 구입했다.

    딱 적정량을 마시려고.

    지거란 이런거

    그리고 또 알아보니 위스키 잔이 또 있네.

    나름 적절히 마시겠다는 일념으로,

    '위스키는 여기에 마셔줘야지!'로 유명한 글랜캐런 잔 중 미니 사이즈로 구매.

    마지막으로 내가 위시 리스트는,

    크리스털 위스키 보관 병이다.

    이거 있잖아,

    영화에서 심각한 얘기 할 때 ‘자네, 한잔할 텐가’ 하면서 따라주는 거 말이야.

    이거 나중에 내 딸내미가 남자친구 놈이나 결혼할 놈 데려오면 필요한 소품 중 하나다.

    한 손에는 샷건 하나 들고,

    ‘남자친구라고? 한잔할 텐가. 이야기가 길 것 같은데 말이야’

    하면서 크리스털 위스키 병에 아드벡 슈퍼노바 한 잔 줘야겠어.

    아…갑자기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만 써야겠다…

    그날이 언젠가 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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